이동용 (수필가/철학자)
특별한 관계를 원한다면 ‘시간 보내기’를 해야 합니다. 원하는 만큼의 관계를 기대한다면 그만큼의 노력을 시간 속에 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얻은 것들은 다 시간 속에서 공들여 쌓은 탑들과 같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시간이고 자신의 인생이라 불릴 뿐입니다.
나의 탑 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탑은 나의 아내입니다. 만남의 시작 지점은 정말 아득하게 멀기만 합니다. 아내는 십대 후반이었고, 나는 이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아내는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아내는 학생이었고, 나는 교회 학교 선생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어느 무덥던 여름날, 방학을 맞이하여 교회 학교에서 대성리 근처의 샛터라는 곳으로 수련회를 간 날이었습니다.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왼쪽 엄지 오른쪽 엄지를 차례로 펴는 네박자 게임을 하는데, 짙은 파란색 패딩 조끼를 입고 구석에서 즐겁게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리듬을 타던 여학생이 나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눈이 엄청 크고 예뻤습니다.
그날 저녁 선생들이 각자 나름대로 뭔가를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는 성경 구절을 설명하고, 누구는 노래하고, 나는 연극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인극을.
나는 그 당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거의 대사처럼 외우고 다녔습니다. 가방에는 언제나 들어가 있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거의 삼십분을 넘게 대사처럼 외웠습니다.
훗날 아내는 그때를 생각하며 내 눈이 날카로웠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남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나는 교회 선생에서 교회 오빠로 만만해져 갔습니다.
우리는 늘 함께 있었습니다. 아내는 수첩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자신의 일들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는 삼백육십오일 중에 삼백육십일을 만났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해가 되어 매년 해오던 행사로 삼일절 기념 등반을 했습니다. 아내는 고삼 졸업반이었고 나는 여전히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산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들은 각자 버너와 코펠 등을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산에서 다람쥐처럼 뛰어 다녔습니다. 학교 대표 사이클 선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등반 실력은 하산할 때 더욱 빛났습니다.
다른 여학생들은 애교 섞인 비명을 질러대며 얼음 위에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아내는 밑바닥도 미끄러운 농구화를 신고서 껑충껑충 도약을 하며 내려갔습니다. 마치 산에 사는 단발머리의 도사처럼 점프하던 그 뒷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건강함과 발랄함이 그녀의 이미지였습니다.
등산을 마치고 아내의 두 친구들과 함께 카페로 갔습니다. 세 여학생들은 요란하게 떠들었습니다.
그때 정면에 앉아 있던 아내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팔씨름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만만해 보였나 봅니다.
그때 우리는 처음 손을 맞잡았습니다. 나는 져줬다고 생각했고, 아내는 이겼다고 좋아서 날뛰었습니다. 팔씨름이 뭐라고, 승부욕은 대단했습니다.
또 어느 날 토요일 저녁에는 선생들이 분장을 하고 패션쇼를 하기로 했나, 뭐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아내는 나를 담당하여 여장시켜 주었습니다. 볼에 빨갛게, 입술에 자기가 바르던 루즈를 발라주었습니다.
내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학생들이 웃으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뭘 어떻게 분장했길래 아이들이 이러나,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나중에 사진이 나왔을 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여자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아내의 작품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정말 사귀기 시작했고, 십삼 년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수유리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사십 년이 넘도록 이렇게 손을 잡고 걸어 다닙니다.
우리의 삶은 익숙한 시간이 되어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상이라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