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 AI는 공감하는데 인간은 촬영 중

어둠을 찢고 번뜩이던 수백 개의 차가운 스마트폰 액정

AI는 구조를 외치며 울고, 인간은 조회수를 사냥하며 웃다

35년 베테랑 경찰이 목격한 가장 잔인한 흉기의 정체는…

사진=AI생성

"아직 안 떨어졌어? 나 데이터 다 써 가는데."

 

35년 경찰 현장에서 내 귀를 가장 잔인하게 찔렀던 것은 피해자의 비명도, 가해자의 변명도 아니었다. 빌딩 옥상 난간에 매달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 생명을 향해, 스마트폰 라이브 방송의 '데이터 소모'를 걱정하며 뱉어낸 구경꾼의 짜증 섞인 이 한마디였다. 그 순간, 폴리스라인 너머의 풍경은 지옥보다 더 기이했다.

 

구조대원의 다급한 손길보다 자신의 카메라 앵글 속에 담길 '결정적 순간'에 더 몰입한 사람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수백 개의 액정들은 차가운 칼날이 되어 위태로운 그 남자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정작 내 주머니 속 AI 비서는 '위험 상황 감지, 즉각적인 심리적 개입과 구조가 필요합니다'라며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있었지만,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은 그 비극을 조회수라는 먹잇감으로 삼기 위해 마른 침을 삼켰다. 

 

기계는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 동족의 고통을 사냥하는 시대. 이것이 35년 치안 행정 전문가가 목격한 2026년 대한민국 인권의 서늘한 민낯이다.

 

렌즈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린 비겁한 관찰자들


오늘날 기술의 진보는 경외감을 넘어 공포를 자아낼 정도다. 생성형 AI는 이제 인간의 미세한 안면 근육 떨림까지 분석해 슬픔의 깊이를 수치화하고 맞춤형 위로를 건넨다. 최신 자살 예방 상담 봇은 감정 노동에 지치는 법 없이, 24시간 내내 절망에 빠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직조된 '가짜 심장'이 인간의 아픔에 가장 헌신적으로 반응하는, 참으로 기묘하고도 슬픈 역설의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들은 정반대다. 스마트폰이라는 '관음증의 흉기'를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타인과 교감하는 능력을 스스로 거세해 버린다. 대형 참사나 사고 현장에서 부상자의 지혈을 돕고 구급차의 진입로를 확보하는 대신, 더 자극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렌즈에 담기 위해 앞다투어 밀려든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끔찍한 고통을 팝콘 삼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인권 전문가로서 나는 이러한 참담한 기현상을 '공감의 외주화'라 명명한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연대하고 함께 눈물 흘리는 피곤한 역할을 기계 시스템에 떠넘겼다. 그리고 스스로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안전한 관찰석에 앉아, 타인의 파멸을 스펙터클한 영화처럼 관람하려 든다. 

 

누군가의 삶에 깊이 개입했을 때 감당해야 할 도의적 책임과 감정적 소모를 회피하고자, 6인치 액정이라는 차가운 방패 뒤로 비겁하게 몸을 숨긴 것이다.

 

구조대보다 카메라가 먼저 도착하는 사회의 비극


이러한 군중의 잔인성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부해 보면, 그 심연에는 '탈인격화(Deindividuation)'라는 무서운 덫이 입을 벌리고 있다. 카메라 렌즈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대상은 더 이상 나와 같은 온도로 숨을 쉬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단지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되고 휘발될 '콘텐츠 픽셀'로 전락할 따름이다. 프레임이라는 가상의 장벽이 마음속 죄책감과 윤리의식을 마비시키고, 그 빈자리에 관음의 쾌락과 '좋아요'를 향한 맹목적인 욕망을 채워 넣는다.

 

최근 발표된 치안 정책 연구 통계를 들여다보면 상황의 심각성은 절망에 가깝다. 대형 사건·사고 발생 시, 119나 112 구조 신고보다 SNS 라이브 방송 송출이나 영상 업로드가 먼저 이루어진 사례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생사가 오가는 피 말리는 골든타임에, 군중의 손가락은 생명을 살리는 다이얼이 아닌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른다. 35년 전,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동네 주민들이 득달같이 달려 나와 담요를 덮어주던 그 뜨거운 풍경은 이제 화석처럼 굳어버린 과거의 전설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라는 얄팍한 명분으로 타인의 비극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극도의 공포와 고통에 처한 이의 동의 없는 기록은 또 다른 형태의 가해 행위다. 

 

35년간 몸담았던 경찰 조직을 떠나며 내 뇌리에 가장 끔찍하게 각인된 장면은 훼손된 시신이 아니었다. 피 흘리며 쓰러진 피해자의 훼손된 존엄을 짓밟으면서까지 더 자극적인 앵글을 찾으려 발을 구르던 구경꾼들의 텅 빈 동공이었다.

 

이제 렌즈를 내리고 진짜 인간의 눈을 맞출 시간


진정한 인권 감수성은 타인의 약점을 '기록하는 손'이 아니라, 수렁에 빠진 이를 향해 기꺼이 '내미는 손'에서 피어난다. AI가 아무리 문학적이고 완벽한 위로의 문장을 생성해 낸다 한들,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피 흘리며 떠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체온이 밴 겉옷을 벗어 덮어줄 수는 없다. 그 온기는 오직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진짜 인간'만이 나누어 줄 수 있는 고귀한 존엄의 증거다.

 

타인의 비극을 씹을 거리로 전락시키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온전히 안전할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 도로 위에 쓰러졌을 때, 수십 명의 인파가 나를 구하는 대신 스마트폰 렌즈를 들이밀며 생중계할 것이라는 공포. 그 서늘한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권은 사치스러운 활자에 불과하다. 

 

주변 이웃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내는 일은, 나 자신이 훗날 누군가의 비참한 구경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가장 확실한 생존 전략이다.

 

이제 우리는 맹렬하게 질주하던 디지털의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 기계가 사람보다 더 다정하게 공감하는 이 지독한 역설의 시대에, 우리만이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해답은 결코 복잡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당장 움켜쥔 스마트폰을 내리고, 고통받는 타인과 직접 눈을 맞추는 작은 행동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35년이라는 긴 공직 생활을 갈무리하며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다.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을 구원해 낸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손을 잡아준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었다. 인권은 프레임 밖에서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참여해야 할 삶의 태도다. 

 

오늘, 비극의 현장에서 스마트폰 녹화 버튼을 누르기 전 1초만 생각해보라. 기계마저 외면할 차가운 사냥꾼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온기를 나누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그 디지털 흉기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순간, 우리의 인권은 비로소 다시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사진=전준석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작성 2026.05.05 17:56 수정 2026.05.0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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